펫저널

펫저널

로또의 아파트 적응기

yahopet · 2018. 5. 18. 23:53

글 / 김영수


어머니께선 근심스럽게 말씀하셨어요.
“야생으로 살았는데, 로또가 아파트에 잘 적응하것나?”
여기서 로또는 대박 로또가 아니고 12살 된 수컷 반려견 이름입니다. 떨어져 사시는 어머니께서 무릎 인공관절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3-4개월 이모네서 요양하기로 해, 아들인 제가 로또를 돌보기로 한 것입니다.




로또 이 녀석은 본래 용인 우리 동네 유기견이었어요. 3개월 정도 된 검은색 바탕에 가슴과 귀에 황금색 털이 난 녀석을 키우기로 한 거죠. 산자락에 터가 넓은 어머니 단독 주택에 가져갔어요. 적적하신 어머니께 위안이 되고, 넓은 산야를 뛰어다니는 게 개에겐 더 행복할 것 같아서였어요. 그런데 큰 개만 키우시던 어머니는 로또를 보더니 시큰둥하셨어요.
“숏다리에 쪼맨한 게, 한 그릇도 안 되겠네.”
“아이 참. 엄마, 먹는 게 아니라 애완용이라니까요.”
걱정과 달리 로또는 어머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죠. 한 달 뒤 전화가 왔어요.




“야야, 고놈 무지 똑똑하데이. 산책 가자고 지가 개 줄을 물고 나한 테 온 데이. 집을 얼매나 잘 지킨다고. 한번 본 사람은 짖지도 않애. 말귀를 얼매나 잘 알아듣는지 몰라. 저번에는 멧돼지랑 싸워서 이겼데이.”
그리고는 개 이름을 검둥이에서 ‘로또’로 개명하셨죠. 로또 당첨된 것처럼 복덩어리란 뜻이었어요. 로또는 그렇게 산천을 맘대로 뛰어다니며 결혼도 해서 자손도 번성시켰고, 어머니께 기쁨을 주며 멀리 떨어진 저 대신 아들 노릇을 톡톡히 했지요. 그런데 이제 로또가 12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겁니다. 어머니께선 신신당부 했어요.
“로또는 매놓으면 절대로 똥오줌을 안 싼데이. 그라고 이놈 바람둥이데이. 발정 난 암컷 쫒아 다닌다고 며칠씩 안 들어와서 잡으러 다녔데이. 마실에 가믄 이 놈이랑 똑같이 생긴 강아지들이 수두룩해.”
어머니는 수술 후에 퇴원을 하셔서 이모네 가시고, 저는 로또를 데려왔지요. 야생에서 살아온 로또의 파란만장한 아파트 적응기는 이렇게 시작되었어요.




소변 시트를 깔고 베란다에 가뒀는데, 산책가려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복도에 실례를 하고 말았어요. 집안에서는 절대 대소변을 보지 않기에 꾹 참고 참다가 그만 실례를 한 거죠. 대소변 참다가 혹시 병이나 걸릴까 싶어 하루 두 번 산책을 시켜야했어요. 맞벌이 하는 우리 부부에겐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어요. 그래도 하루 종일 혼자 갇혀 있다가 20-30분 산책나간다고 좋아서 펄떡펄떡 뛰는 모습을 보면 가여워서 마누라는 아침, 나는 저녁으로 나눠 산책을 시켰어요. 마침 단지 앞에 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 있었어요. 밖에 나온 로또는 제가 숨이 찰 정도로 말처럼 뛰고, 습관처럼 다리를 들고 나무마다 소변으로 영역표시를 했죠. 땅도 파고 낙엽위에 데굴데굴 구르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요. 로또는 어머니 말대로 정말 똑똑했어요. 한번 간 길은 절대 잊지 않았고, 몇 번 주의를 주자 사람을 봐도 짖지 않았어요. 무서워하던 엘리베이터도 자기 집처럼 드나들며 빠르게 적응했지요. 언제부턴가 로또와 대화하며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해지더라고요. 한 가지 애로사항이 있다면, 산책을 마치고 단지로 들어갈라치면 요놈이 버티며 풀썩 주저앉는 거예요. 밖에 더 있겠다고 아이처럼 떼를 쓰는 거죠. 그날도 단지 입구에 도착했는데, 별안간 ‘깽’하는 비명과 함께 뒷다리를 들고 아파했어요.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리거나 벤 것이 틀림없다싶어 살펴보려고 만지려하니 오지도 못하게 뿌리쳤죠. 바짝 긴장하고 가축병원에 가려는 데, 퇴근한 주민들이 우르르 몰려오자 멀쩡하게 걷더라고요. 살펴보니 피도 나지 않았어요. 전 갸우뚱 했어요. 설마...꾀병? 전 흥분해서 마누라에게 떠벌였어요.
“와, 꾀병 연기를 하더라니까. 내가 깜빡 속았다고. 인간을 속이다니, 이 정도 지능이면 영장류아냐? 완전 개똑똑, 아인슈타인이라니까. 얘 학습지 시켜야하는 거 아냐?”
내 말을 듣고 있던 마누라는 저를 보며 눈을 끔뻑이다가 이렇게 혀를 차더라고요.
“내가 딸바보, 아들바보는 많이 들어봤는데, 우리 집에 개바보가 사는 줄은 미처 몰랐네. 쯧쯔.”
개바보면 어떻습니까. 내 눈에 콩깍지지요. 그렇게 개부심으로 하루하루 뿌듯할 무렵, 일이 터지고 말았어요. 온라인 주민 카페 게시판에 민원이 올라온 겁니다.




“104동에 자꾸 개 짖는 소리가 나요. 공동 생활하는 데 매너 좀 지켜주세요.”
식겁했죠. 전 로또를 앉혀놓고 훈계를 했어요.
“너 사람이 없으면 짖는구나. 여긴 시골하곤 달라. 절대 짖으면 안 된다고. 쫓겨나.”
로또는 꼬리를 축 내렸어요. 그런데 며칠 뒤에 또다시 민원이 올라왔어요.
“여전히 개 짖는 소리가 나네요. 주민회의 안건에 올리겠습니다. 적발되면 모종의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나는 로또에게 호통을 쳤어요.
“이놈아, 짖지 말라니까. 너 쫓겨나면 어디로 갈래? 다시 길거리에서 살래?”
로또는 귀를 축 늘어뜨린 채 말없이 제집으로 들어갔어요.

휴일 오전이었어요.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죠. 전 후다닥 로또에게 달려갔어요.
“너 정말 그럴...가만!”
로또는 입도 벙끗 안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또 개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겠어요. 위층 강아지 였죠. 범인은 로또가 아니었던 겁니다.
“미안타. 잠시나마 널 의심해서.”
로또는 앞발을 제 무릎 위에 턱 걸쳐놓았어요. 용서한다는 표시가 틀림없었어요.




그날은 전날 온 비로 땅이 질척했어요. 앞동산을 피해 아스팔트가 잘 포장된 공원으로 갔죠. 산책도중 로또 친구를 만났어요. 스카프를 매고 말끔한 차림에 머리가 희끗한 멋쟁이 아주머니가 눈처럼 하얀색 포메라니안 강아지를 안고 벤치에 있었어요. 털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얼굴이 조막만하고, 알록달록한 신발에 레이스가 달린 빨간색 치마를 입고 있어서 한눈에도 암컷이란 걸 알 수 있었죠. 로또는 꼬리를 치며 거침없이 다가갔어요. 아주머니는 도도한 말투로 물었어요.

“애 이름이 뭐예요?”
“로또요.”
“로또? 호호, 독특하네. 우리 애는 코코인데. 코코 샤넬. 품종은 뭐예요?”
“품종요?”
나는 우물쭈물 하다가 답했어요.
“잡종...아니 엄마는 검정색이고, 아빠는 황금색이요.”
“호호호, 말씀이 참 재미있으시네. 옷도 안 입고 춥겠다. 미용실도 안가고...”
로또를 얕잡아보는 말투에 슬며시 화가 났지만 꾹 참았어요. 대화하다보니 아주머니가 우리 집 위층에 산다는 걸 알게 됐죠. 매너 없이 짓던 바로 그 개가 코코였던 겁니다. 그런데 로또가 습관대로 다리를 들어 벤치 다리에 영역을 표시했어요.
“어머 저게 뭐야! 대소변은 집에서 해결해야지 밖에서 무슨 짓이야. 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저래요?”
대놓고 로또를 디스하다니. 어이가 없었어요. 야생견이 그렇지 뭐. 하지만 전 아무 대구도 안했어요. 이웃지간에 공연히 얼굴 붉힐까봐요. 무거웠는지 아주머니는 코코를 땅에 내려놓았어요. 코코가 땅에 앉자 아주머니가 질색을 하며 야단을 치더군요.
“얘, 어딜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니! 엄마가 그렇게 가르쳤어? 근본 없는 개처럼 굴지 말거라.”
왕실 공주 교육이 이렇게 엄격할까요. 혀를 내둘렀어요. 반면 로또는 할배 나이였지만 피가 끓는 야수 같은 남자, 남자였죠. 로또는 코코에게 다가가 냄새를 맡았고, 코코는 약간 겁먹은 표정이었어요. 이때 나와 아주머니는 동시에 비명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로또가 코코에게 껄떡대는 게 아니겠어요. 전 기겁을 하고 목줄을 당겼고 아주머니는 놀라서 코코를 번쩍 안고는 맹비난을 퍼부었어요.
“숙녀에게 무슨 짓이에요! 넘볼 걸 넘봐야지. 불결해.”
“죄, 죄송합니다.”
아주머니는 코코를 안고 가면서 들릴락 말락 중얼거렸어요.
“아주 근본이 없어. 개는 주인을 담는다더니.”



아니, 혈기왕성한 수캐 본능이 그런 거지, 어디 제가 그런 겁니까? 졸지에 치한이 된 저는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뒤통수에 쏘아붙였죠.
“104동에서 매일 짖는 게 바로 코코죠. 주민 게시판에 올릴 겁니다. 아파트 살면서 기본적인 매너는 지켜야지, 원. 개는 주인을 닮는다더만.,.”
아주머니는 달아나듯 총총걸음으로 사라졌어요. 전 로또에게 타일렀어요.
“야, 아무 암컷에게 찝쩍거렸다간 너 전자발찌 찬다. 시골하곤 다르다고.”
로또는 겸연쩍은 듯 입맛을 쩍쩍 다셨어요.
로또의 아파트 적응기는 순탄하진 않지만, 그래도 슬기롭게 헤쳐 나가고 있답니다.
걱정입니다. 어머니께서 귀가하면 어쩌죠.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 벌써 이별이 걱정되네요. 그래도 답답한 아파트보다야 뻥 뚫린 산천이 로또에겐 더 행복하겠죠?